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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전성기 불상 출현, 희망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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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림사 작성일15-12-10 19:27 조회1,5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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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유물 아닌 예경받는 부처님 복원
복원 과정서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이 부담
생각만 바르다면 부처님 가피 있을 것

“통일신라시대 최전성기 불상의 출현은 글로벌 위기와 함께 찾아온 경제적 시련을 잘 이겨내라는 부처님의 수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비록 경제난으로 하루하루가 팍팍하고 힘들겠지만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 융성했던 통일신라시대와 같은 좋은 때가 올 것이라는 그런 자비로운 약속 같은 것 말입니다.”
지난 2월 3일, 경주 기림사 경내에서 약사전 삼존불 첫 문화재 전문가 자문회의를 연 종광 스님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예불하고 기도하며 모셔왔던 약사전 삼존불이 문화재 최고 권위자들에 의해 통일신라 최전성기 시대 불상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특히 조성 양식에 있어서도 나무와 흙이 함께 사용된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우리 불상의 역사를 다시 써야할 그야말로 세기의 발견으로 극찬을 받은 터였다.
“기림사는 천년 고찰입니다. 그런 까닭에 문화재도 적지 않지요. 그러나 약사전에 모셔진 삼존불만큼은 많은 의구심을 자아냈어요. 균형이 맞지도 않고 지나치게 비대해 예술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던 거지요. 문화재 전문가들도 원래 있던 불상은 사라지고 일제에 의해 다시 조성된 것이 아닌가하는 견해를 밝히곤 했습니다.”
삼존불 옛 모습 드러날 땐 전율 느껴
그럼에도 약사전 부처님에 대한 스님의 마음 씀이 조금은 특별했다. 약사전이기 때문에 병고로 시달리는 불자들의 귀의와 애절한 기도가 그치지 않아서였다. 스님이 대대적인 개금불사에 착수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그런데 개금을 하는 과정에서 두껍게 덧칠해진 흙을 벗겨내자 그 안에서 섬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날렵한 신라시대의 불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삼존불의 좌대가 너무 작고 조잡해 개금을 하면 꼭 바꿔드리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개금을 하기 전에 미리 좌대부터 제작을 의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지요. 그런데 하루는 작업을 하던 권순섭 박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불러요. 그래서 가서 보니 좌대를 뜯어낸 자리에서 동산처럼 부풀어있던 본래 발 안에서 날렵하고 가늘면서도 발톱까지 선명한 아름다운 발이 나온 거예요. 급하게 경주시청의 담당관을 불러 입회를 시켰지요. 그리고 발 위의 부위도 조금씩 걷어냈습니다. 허리로 가슴으로 불상의 아름다운 원형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더군요. 약사전 삼존불이 수차례 보수단계를 거치면서 적게는 5cm, 많게는 15cm정도의 두께로 흙이 덧칠해져 있었던 거지요.”
물론 스님의 물기어린 감회에는 찬란한 신라 불상의 출현이라는 세속적 발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1200년 오랜 세월동안 본래 모습을 잃고 진흙에 갇혀서도 언제나 말없이 아프고 병든 이들의 고통을 어루만졌을 부처님의 말없는 자비로움에 울컥 목이 잠겼기 때문이다.
사실 스님이 삼존불의 원형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불제자로서의 지극한 마음의 발로였다. 문화재적 가치가 별로 없으니 그냥 두자. 카슈 도료를 사용하면 3일이면 간단히 개금을 끝낼 수 있다 등 각종 유혹이 잇따랐다. 그러나 스님은 모두 물리쳤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30년 동안 옻을 연구하며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옻 분야 최고 전문가 권순섭 동방대학원대 교수를 초빙해 전통 방식으로 개금을 진행한 것이다. 밉든 곱든 효를 다 해야 할 소중한 내 부모(부처님)가 아닌가. 더구나 부처님 일을 할 때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은사 월산 큰스님의 가르침을 누누이 들어 온 터였다.
약사전의 삼존불이 보물급 혹은 국보급이라는 평가가 나오자 경주시청 담당자부터 문화재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문화재로 지정을 받으면 정부에서 복원까지 책임질 것이니 먼저 문화재 지정부터 서두르자는 의견에서 약사전에는 모조품을 모시고 진본은 박물관에 보존하자는 조언까지. 그러나 스님은 단호히 거절했다. 부처님이 박제화 된 문화재나 유물로 취급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복지시설에서 아무리 부모를 극진히 모신들 자식만큼의 정성을 쏟을 수 없듯이 정부에 복원을 맡기면 귀의의 대상이었던 부처님이 오래된 유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복원 후 대규모 학술대회 계획
“약사전의 삼존불은 과거 1200년 동안 수많은 이들의 경배의 대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복원 이후 또 1200년을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이들의 예경의 대상이 돼야 합니다. 보물급이네 국보급이네 말들이 많지만 그것은 차후의 문제입니다. 삼존불을 신라의 불자들이 조성했던 원형 그대로 복원해 아프고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모실 계획입니다.”
그러나 스님은 요즘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부담으로 인해 가슴 알알이 고민이 커졌기 때문이다. 문화재에 관한 한 최고 전문가들로 자문위원을 구성한 만큼 원형 복원에 대한 고민은 덜었다. 그러나 복원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경비를 얼마나 감당해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각오를 단단히 해도 각오는 여전히 각오일 뿐이다.
조사 단계에 머물러 있는 현재에도 매달 1000만 원 정도의 재원이 소요되고 있다. 앞으로 본격적인 복원 작업이 진행되면 얼마나 많은 예산이 소요될 지 장담을 할 수 없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복원 작업과 엑스레이 촬영 등 최첨단의 현대 기술을 총동원하고 여기에 복원이 끝나면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학술대회까지 계획하고 있는 스님으로서는 마음을 다 잡아도 ‘몰록’ 고민이 튀어나온다.
“옛 말에 절일은 절로 절로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걱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만 바르면 불보살의 가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처님 일 하는데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스님은 복원이 끝나면 해인사 비로전처럼 화재 시 바로 지하로 내려가는 구조의 소방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불자들에겐 자긍심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에겐 희망으로 뒤에 올 후손들에겐 위대한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불가에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라 최전성기 부처님의 출현이 바로 시절인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부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거지요.”
자문위원들과 불자들이 모두 돌아가고 텅 빈 절 마당으로 고요가 내려앉을 즈음 삼존불이 모셔진 기림사 박물관으로 향하는 스님의 걸음에 한발 두발 봄날처럼 따스한 훈풍이 불고 있었다.
 
경주=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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